뽀영이 (2001-12-29 10:25:51, Hit : 1015, Vote : 3)
[기사] 뉴스메이커를 통해 본 2001 문화(조선일보)
[문화] ‘뉴스메이커’를 통해 본 2001 문화 (2001.12.28)
대중스타 좇아 환호하고…'보수-진보 갈등' 날카롭고
2001년 한해 동안 일간 신문에 가장 이름이 빈번하게 등장한 문화예술인(대중문화 표함)은 누구일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이를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일상화된 지금, 잠시만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다면 신문에 자주 나오는 문화인 명단을 작성할 수 있고, 그에 따라 2001년의 문화계 지형도를 그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언론 데이터 베이스 KINDS 검색 결과, 조선일보 등 종합일간지 10개에 등장한 올해의 문화계 뉴스 메이커 1위는 작가 이문열. 단신이나 행사 소식 등을 제외한 주요 기사로만도 475건이나 됐다.
‘신문에 많이 났다’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의 활동이 최고 수준이었다거나 해당 분야에서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날 그날 대중의 ‘암묵적 뉴스 욕구’에 조응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한해동안 신문 지상에 오른 이름들을 찾아보는 것은 ‘순위매기기’가 아니라 우리들 관심사를 역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이문열 관련 기사는 문화면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사회면, 정치면, 사설, 그리고 독자의견란까지 실로 다양하다. 신작 발표나 문학관 설립 등 이씨의 문학 창작 활동과 관련되는 것은 10% 정도고, 대부분 7월 이씨가 조선일보에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란 시론을 기고한 뒤 그의 사회적 발언을 둘러싸고 빚어진 사회적 정치적 다툼이 뉴스가 됐다. 11월 들어 ‘이문열 책 반환’ ‘책 장례식’이 벌어지자, 작가 박완서씨가 이를 ‘문학에 대한 모독’이라고 짚고 나서면서 ‘이문열’이란 이름은 우리 사회 이른바 보수ㆍ진보진영 간 다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다툼이 탄탄한 논지에 근거한 논쟁이 아니라 인신공격 형태로 전락한 것은 우리 사회 지성의 얄팍함을 드러내보인 씁쓸한 경험으로 기록된다.
두번째로 많이 등장한 문화인물은 댄스그룹 god.(440건) 그룹 멤버 박준형과 한고은의 연애 소식, 그리고 박준형 퇴출, 퇴출 번복이 여름내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고, 4집 앨범을 낸 뒤 핸드팬 벨소리 다운로드 횟수를 통해 ‘벨보드 차트’ 상위에 오르는 인기 저력을 보였다. 바로 그뒤를 잇는 것은 역시 댄스그룹 H.O.T(402건)로, 2월 콘서트 때는 공연장 앞에서 밤을 새던 소녀팬들이 노숙자 이불을 가져가버려 “내 이불을 돌려달라”는 소동이 보도되기도 했고 5월에는 ‘해체 선언’이 관련 주가까지 오르내리게 만들었다. 세번째로 이어지는 뉴스 인물 역시 대중연예인이다. 신용카드, 정수기, 냉장고, 이동통신 등 생활 바로 주변에서 쓰이는 상품과 서비스 모델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영애(390건)가 꼽혔다. 올해 영화 ‘선물’과 ‘봄날은 간다’ 2편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배우로도 면모를 일신한 이영애는 최근 방송광고공사에서 전국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최고 인기 모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385건)도 역시 많은 빈도를 기록했다. 올해는 특히 사제 서품 50년과 팔순을 맞아 ‘사형제도 폐지’에 앞장서 각계 인사들을 설득했고, ‘과학 사랑’ 등 사회적 이슈의 ‘전도자’역을 자임, 우리 사회의 큰 어른 몫을 했다.
조성모(347건)는 ‘잘가요 내사랑’으로 1000만장 판매 대 기록을 겨냥했고 90년대 대중 문화 풍경을 바꾼 기린아 서태지(336건)는 1월 콘서트를 열고 ‘얻은 건 매니아 잃은 건 대중이었다’는 말을 남긴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작고한 미당 서정주 시인은 사후에도 뉴스 초점. 게재 건수 314건을 기록했다. 작가나 작품으로서보다 ‘친일 시비’를 두고 사회적 논쟁의 중심이 됐다는 점에서 2001년 문학논쟁의 성격을 드러냈다. 후배인 시인 고은이 그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아 작품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자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찬반 논쟁이 일었고, 역시 후배인 시인 문정희는 고은의 논지를 정면에서 반박하기도 했다.
미남 스타 장동건(303건).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친구’에서 인상적인 깡패 연기를 보여준 그는 ‘친구’ 관련 보도는 물론 중화권 한국 대중 문화 열풍인 ‘한류’ 주인공으로, 장기기증을 약속한 ‘선행’으로, 팬클럽의 조직적 활동으로 다양한 기사의 주인공이 됐다. 친구에서 그가 거칠고 탁한 목소리로 내뱉었던 대사, “내가 니 시다바리가” “고마해라, 마이 뭈다”는 그의 인기와 함께 유행어 수위에 올랐다.
‘명성황후’ 이미연도 올해 누구보다 자주 신문에 등장했다. 그의 얼굴을 표지로 내세운 편집CD앨범 ‘연가’가 홈런을 터뜨린 뒤, 영화 ‘인디언 썸머’ ‘흑수선’ 2편에서 주연했고, TV사극 붐을 탄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 역으로 장타를 날렸다.
가장 많이 등장한 10명의 뉴스 인물 중 7명이 대중 문화 스타다. 우리가 그만큼 대중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반증인 한편, 특정 유명인을 좇는 미디어의 속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 박선이기자
sunnyp@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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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