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5-01-10 17:28]
[오마이뉴스 문동섭 기자]먹고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사회는 더 흉흉해집니다. 또 인심은 갈수록 각박해집니다. 모든 것이 메말라 있는 요즘, 훈훈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일이 참 없습니다. 울어 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그런 제가 한 달 전부터 매주 토요일 밤만 되면 눈시울을 붉힙니다.
그것은 바로 MBC <느낌표!> 때문입니다.
<느낌표!>는 많은 사람들이 아시다시피 공익적인 내용을 웃음과 감동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입니다.
개인적으로 직업이 도서관 사서이다 보니 이전 <느낌표!>에서 해주었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아주 관심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러한 저의 <느낌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다시 시작하는 <느낌표!>에 대한 관심과 시청으로 이어졌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느낌표!>는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고, 남북한의 동질성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남북한 어린이 알아맞히기 경연', 생활 속에서 신선한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과 따뜻한 미담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는 '찰칵찰칵, 대한민국의 오늘을 찍는다', 어려운 형편과 인식 부족으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에게 무료로 개안수술을 해주는 '눈을 떠요!' 등 예전 못지 않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코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MBC의 <느낌표!> '눈을 떠요!' 한 장면
ⓒ2005 iMBC
이 코너들 중에서 저를 눈물짓게 하는 것은 '눈을 떠요!'입니다. '눈을 떠요!'를 보면서 보이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한 스포츠 댄서의 아픔, 빛을 잃으면서 희망도 서서히 잃어가던 남매의 아픔, 객지 생활하는 자식들에게 밑반찬 한번 갖다 주지 못한 어머니의 아픔.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렇게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빛을 찾아준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찾아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눈을 떠요!'는 각막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술, 개안, 회복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각막이식 수술 후 환자가 눈을 뜨는 순간은 북받쳐 오르는 감동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환자의 눈에 감겨져 있는 하얀 붕대가 풀리고 환자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눈을 뜹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바짝바짝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한 얼굴로 이를 지켜봅니다. 환자의 눈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뜨거운 한 마디 '잘 보여!'. 이 한 마디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가슴 속 깊이 쿡쿡 눌러 두었던 눈물을 토해냅니다. 저 역시 이 감동적인 장면을 보면서 목덜미와 어깨를 끙끙거리며 맺힌 눈물을 연신 찍어냅니다.
'느낌표!'가 끝난 후 저는 제 두 눈을 감고 일어섭니다. 제 방문을 열고 어머니가 있는 큰 방을 향해 더듬더듬 걸어갑니다. 마루 소파에 걸리고, 벽에 부딪치면서 힘겹게 큰 방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저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휘휘 저으며 "어무이 어디 있는교?"합니다. 어머니는 이런 저를 보고 '야가 와 이카노?'라고 합니다.
저는 어머니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앉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만져 봅니다. 어머니는 생뚱맞은 저의 행동에 '와 이카노?'를 되풀이합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지척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게 합니다. 그렇게 저는 세상을 보는 당연함이 큰 기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 MBC <느낌표!>의 '눈을 떠요!' 출연진들. GOD와 김제동(가운데)
ⓒ2005 iMBC
<느낌표!>를 보며 감동의 느낌표를 찍어내던 저는 그 감동이 진정되고 나니 안타까운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MC들이 각막을 입수하기 위해 공항의 수화물창고로 달려가서 '휴먼 아이즈(Human Eyes)'라고 적혀 있는 하얀 상자를 들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는 장면입니다.
국내 각막기증자들이 극히 적어 각막을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MC들은 공항의 수화물창고로 달려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수는 약 30만명에 이르고 이 중 각막이식 수술을 받으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2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각막기증의 부재로 한 해 1% 미만 정도만 수술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지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적 가치관과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부족이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을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각막기증만 있으면 눈을 뜰 수 있는 사람들이 2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한 사람이 각막을 기증하면 다른 한 사람이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크게 망설일 것도 없이 저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에 접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홈페이지(http://www.donor.or.kr)를 찾아 사후 각막기증에 대한 서약을 했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을 보지 못하다가 새롭게 모든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크게 예쁘지도 않은 제 눈이 그런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참으로 기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또 시각장애를 가진 우리 이웃들에게 파란 눈이 아닌 까만 눈을 줄 수 있어서 더 흐뭇해집니다.
'사랑'이 모이면 '기적'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작은 사랑을 기분 좋게 보냈습니다.
/문동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