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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솔로데뷔, 물 만났다! (도시락 웹진)

글쎄다, 세월이 약이라고 해야 할까? 대형 엔터테인먼트 산하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던 아이돌 댄스그룹들을 향해 “너희는 사육되고 있다” “너희는 하나같이 표준 규격 공산품이다.” 라고 줄기차게 딴죽 걸던 이 땅의 의로운 평론가 혹은 진중한 마니아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그 이유인 즉 그 목소리가 “말해봤자 소용없어. 이젠 지쳤어.” 라는 푸념으로 퇴행한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욕 그만하고 까짓 거 브레인스토밍 해보자!” 라는 종종걸음도 분명 있었던 탓이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 것.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것. 결국 대중음악을 정말 대중음악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 대중적/산업적 기능을 100% 고려하는 틀 안에서 이 아이돌 댄스그룹들의 나아갈 바를 고민해보기로 한 것이다. 너희들이 그 틀 안에서 조금이라도 고민다운 고민을 해 준다면, 우리들도 너희들의 고민을 기꺼이 수용하겠다! 흐흠, 어쨌거나 의롭고 진중한 무리들이 특유의 뻣뻣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아이돌 너희들이 이해해줘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 문희준 군처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음악적 진정성에 목을 매는 사례는 요즘 보기 힘들다. 아이돌 댄스그룹 출신인데 솔로로 전향한다구? 가깝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였다. 그 내용물은 문군처럼 되거나 아니면 그룹일 때랑 솔로일 때랑 별반 차이가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세운 모토라고 해봤자 남자는 ‘보다 성숙한 목소리’였고 여자는 ‘보다 성숙한 이미지’였다. 제작자들의 속마음은 언제나 ‘솔로로의 안전한 이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뭐 많이 바꾸는 것도 아니다. 대중적/산업적 기능의 틀 안에서 진짜로 세련되고 진취적인 시도들을, 솔로로 전향한 아이돌들이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 정도만 보여줘도 이제 뻣뻣한 무리들은 좋아라 박수 쳐준다. 물론, 이러한 그네들의 발걸음을 누구보다 쌍수 들어 환영하는 건 당연히 대중들, 또 10대 들이다. 누가 듣기에도 요즘 전향한 솔로들은 작지만 진일보하고 있다. 최근엔 누가 그러했을까? 공교롭게도 앨범 타이틀이 비슷한 두 사람이 여기에 있다. 바로 [Yeah]의 박정아와 [Yes]의 손호영이다.

팝락이라는 전혀 새로운 포맷을 들고 나온 박정아도 일면 대견하지만, 필자는 하던 걸 그대로 들고 나온 손호영이 더 대견하다. 왜냐구? 몇 년 전만 해도 보도자료 안에서만 진실이었던 ‘보다 성숙한 목소리’를 정말 실제로 성숙하게 몸에 익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냐구? 답은 바로 걸음마 선생님 박선주다. 그녀의 프로듀싱이 발군이다. 1번 트랙 'Kiss'부터 4번 트랙 '4U'까지는 박선주의 야심과 이에 부합하는 손호영의 노력이 합쳐진 앨범의 중추이다.

지오디 시절 “너무 떨기만 하는 바이브레이션 아냐?” 했었던 필자의 불만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국적인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훵키한 트랙 위에서 리듬을 타고 노는 'Yes', 'Call me 5500'에서의 손호영의 보컬은 일취월장이라는 수사마저 살짝 넘어서는 듯 하다. 그렇다면 후반부는? 전반부가 꽉 찬 야심이라면, 후반부는 안정된 관록이다. 박선주가 곡을 쓴 '집 앞이야 나와', '작은 가방'은 한국적 멜로디를 분명 담고 있으면서도 상투적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선물'이란 노래도 그렇다. 솔로 첫 앨범인데도 이런 결과물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역시 선생님 박선주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손호영의 자작곡 '해피 바이러스'도 딱 그의 미소만큼 발랄한 것을 택하여 앨범의 말미를 풋풋하게 장식하였다.

그렇다. 진일보하기 위해 야심에 찬 두 다리를 공개한 손호영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해피 바이러스, 살인미소다. 'Yes' 뮤직 비디오를 보면 근육질 몸매의 당당함과 자신감 속에서도 여전히 지오디 시절의 순수를 순간순간 드러내고 있다. 그 뿐이랴. 정말로 지오디의 김태우를 초대해 건전한 우정을 선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고, 박선주와 함께 90년의 명곡 '소중한 너'를 다시 불러 선생님의 과거 팬들까지 끌어안는 재치를 발휘했다.

글쎄, 이런 부탁을 하면 필자 역시 어쩔 수 없는 뻣뻣한 무리에 속하겠지? 아무튼 그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다. 앞으로 몇 번만 더 좋은 선생님 만난다면, 분명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손호영만의 리듬과 손호영만의 소울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해 본다. 일면 쉽게 붐비고 쉽게 뜨뜻미지근해지는 한철의 바닷물이 아니라, 수목이 내주는 진득한 물로 언제나 시원하고 정갈함을 유지하는 사시사철의 계곡물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설령 계곡 입구에서 서성인다 하더라도, 필자는 아낌없는 지지의 박수를 보낼 터이다.

글 / 윤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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